李之氐公을 始祖로 하는 禮安李氏 일족이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66-3에
시조와 조자손 3대 5위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禮安祠)과 시조의 신도비를 건립하고
지난 2015년 10월24일 고유제와 신도비 제막식을 건립 현지에서 열었답니다
성균관 관장 최근덕씨가 撰한 신도비명과 이종문 대종회장의 인사(문)과
성균관 이종훈 부관장 예안향교 박원갑 典敎와 그외 여러분의 인사문에서 보면
공이 고려 원종조대부터 충숙왕대까지 4대에 걸친 공적으로 예안군과 승안군을 봉작 받고
문인공(文仁公)시호를 받은 사적(史蹟)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팀과 한국족보학연구소의 연구와
체계적 고증을 바탕으로 예안군 이지저평전을 오래전 2001년도에 발간한것을 위시하여
시조공의 본거지 예안에 사당과 신도비를 건립하게 되었다는 이병수 대종회부회장의 인사말씀등이
전설이랄 수 밖에 없는 막연한 선대래력을 씨족보의 상계 대통으로 이어 갈 수 없었던 지저파와
안동의 만촌파라고 칭하는 일족이 근년에 양가문이 의중이 합하여 두파의 합보가 이루어질듯 한데
(족보의 상계를 전의 예안대동보의 상계에 임의 편입을 위하여 터무니없는 상계 모록하는 작태와)
예안이씨 이판공파 명문 일족이 이조 중종조대에 낙남 세거하시어 화벌문을 이루고
무수한 선대 명현들께서 전하신 유적 유물이 문화재로서 유학의 수도인 안동에 면면히 이어오는데
더욱이 거유 도산선생의 유적 유지를 이어 내려오는 유학 유림의 단연 으뜸인 고장 안동땅에서 있은 사실이
자칫 자칫, 2000년 11월에 연세대학교 국학고전연구실 명의 "씨족의 원류탐구"(예안 전의이씨를 중심으로)라는
그 그, 허구(虛構)한 책자로 인하여 전의 예안이씨 양 문중에서 분연 항의한 그 그 해괴한 사실의 再版은 아닌지!!!
그 당시의 사실 전모가 상세히 기록된 仁敬彙報 2001년판(辛巳호 14호 157쪽) 오래전 서책을 다시 펼쳐 보고
* 이지저공이 우리 전의.예안이씨 대동보에 여러차례 등재되고 탈보된 사실과
*또 만촌파가 우리 예안이씨 족보 (별보)에 여러차례 등재되고 심지어 우리 예안이씨 족보에 자진 합보한 사실등을
구보(舊譜)를 낯낯이 펼쳐 보고 상고해 둘 필요를 느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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