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송이 73주년 6.25전쟁 기념 행사장에서
모범 광복회원으로 추천 받아 시장 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뭐 - - - 대단찮은 . . .싶은 마음에 그냥 잊힐만도 했지만
번쩍, 옛 생각,
할머님 생존시에 보은군 3.1절 기념행사장에서 독림유공자로 수상하시며
독립운동하신 어른의 배우자로서 수상자 장손은 현재 육군 장교로 복무중이라고
그래서 진정한 애국자 가정이라고 장내에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고 . . .
하시던 할머님 말씀이 그때로서는 여든 장수하시던 모습과 함께 뭉클 회상되었습니다
훨씬 후 휴가차 귀가하니 부상으로 받은 번질 번질한 칠첩 반상기를 펼쳐 보이시면서
처음으로 새 놋주발에 밥 한그릇을 담아 주시던 할머님과 어머님 노 고부간의 애틋한 지성이
약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련히 떠올라서 옛 어른들의 정이 흐르는 인간사는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닮기 어려운 새로운 혈류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
2대 독자 우송의 군 입대는 그 당시로는 바로 우리 가문의 단절, 절손과도 이어지는데
자칫 수 십대 종손의 계대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설왕 설래에 온통 동리가 초상집인듯
그 중에 가근동에 출가한 하나뿐인 고모가 달려오셔 대성 통곡하는 바람에 금방 초상집이 됐고 . .
어쩻든 입대한 우송이 패퇴(敗退)한 최전선 수도고지 격전에서도 살아남아 간부후보생이 되었는데
광주 보병학교 갑종간부후보생 48기(M중대)교육중 고향집에 보낸 (살아있다는 소식의) 편지를 근거로
그때 일흔다섯 시골할머님께서 광주 보병학교에 면회오신 기구한 곡절의 역사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때 전라도 광주는 전라선 열차로 이리에서 호남선으로 환승해야 광주 송정리를 올 수 있었는데
어둑한 밤 열차에서 환승차 내린 할머님의 찰떡 광주리를 받아들은 소년이 앞장서 뛰어 달아나서
청주 대학 재학중에도 집에만 오면 해 주시던 찹쌀떡을 송두리체 뺏기고 얼마나 애석해 하셨을까 . . .
어찌 어찌 보병학교 정문까지 오신 할머님을 엄격히 금지된 면회를 몰래 몰래 성사시킨 당직장교님 . . .
사지에서 구출된 손자를 보시자고 수 천리를 달려오신 노 할머니의 성심에 감동한 당직장교의 모험 . . .
이분 당직장교 영외거주 단간방에서 실로 생사를 가른 격조의 세월을 뛰어 넘은 조손간의 해후가 . . .
이분 내외분과 함께 네사람이 밤을 지세며 울다가 해여진, 그래도 희비쌍곡선의 희대의 면회 상봉. . .
그리고 날이 세기전 M중대 막사에 귀대해서 아무시랑 없이 기상 학과출동하며 팔팔한 용기 사기충천.
할머님은 평소 가근동에서 덕망 높으신 종손부로 존경 받으셨던 뒷 백경은 이런 기구한 인생을 겪음으로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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