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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松 이헌영의 blo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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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4주년(1953.7.27~2017년7월27일)

by 우 송(又松) 2017. 7. 27.

"정전협정  64주년" ...1953년 7월 그때를 회상해 봅니다.

1953년 7.11일 김해공병학교에서 후보생 46명이 공병40기로 임관을 하면서

7.15일 대구 육군본부에 집결하여 공병감실에서 배속 명령을 받으라는 지시를 받자 마자   

학교에서 배차된 추럭으로 부산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고 대전에 닿자마자 보은행 버스를 타고

보은에서 집에까지(7키로)를 휘달려 어둑 어둑할때 집에 도착하였었다

며칫날 졸업(임관)하고 귀가하리라는등 전화 우편등 구체적 연락이 어려웠던 당시

졸지에 나타난 헌영의 존재는 삽시간에 온 동리가 떠들썩 할 수 밖에

평소에 20대종손 2대독자 헌영에게 찍혀진 낙인으로 징집 영장 받아 군 입대시에도

자칫 자칫 절손될것을 염려 기우하던 집안 어른들 부터 온통 동리가 야단이 났었다

잠시 쉴 틈 없이 참봉댁이 먼저고 종조 종증조할아버지댁부터 집집이 인사를 다니니

마치 사지에서 생환한 친손의 영접만큼이나 떠들석하였는데      그때의 내 몰골은

시물세살 동안이 세카맣게 쩔은 꾀죄죄한 조막만 한 얼굴이었지만

삼복 무더위 관계없이 소매 길은 카키복에 반짝 반짝 밥풀딱지 하나짜리 소위가 아니었던가 

그 후의 후문으로도 비록 소위이지만 육군장교의 탄생이 가근동에 크게 자랑할 인물의 탄생이었고 ...

고모댁 외가댁까지를 이틀간에 휘돌아치고 14일날 대구로 가기 위하여 동리앞에서 또 한번의 출정식이 있은 다음

상주 김천을 환승하면서 오후 늦게 대구 육본 근처에서 많은 동기생을 만나 일박하고

이튿날 15일 오전에 육본 공병감실에서 1106야공단(양구) 배속을 명 받았고

일행3명(이헌영 박종규 임종호)과 1103야공단(화천) 배속 3명이 춘천에 도착하여 6명이 같이 일박하였는데

춘천, 피아 포격에 처참한 잔해무더기 틈바귀의 숙박소에서 밤 세도록 울리는 포성에 잠 못자던 일행 동기들은   

내가 "보병8사단 전투시에 공병은 한사람도 못 봤다, 절대로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다독거려 준 한마디가

비록 극단적 극언이었지만 나 이외의 민간 출신 전장 미경험자들이 크게 안도하던 장면이 떠 오른다 

춘천에서 양구의 1106야공단까지는 비록 인솔자나 안내자는 없었지만 곳곳의 헌병검문소가 

쉽게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즉일(16일) 나는 115대대 3중대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은 셈이다

17일 3중대 주둔지 소웅진리에서 중대장 김옥두대위 인솔로 115대대 안훈중령과

1106야공단장 황인권대령에게 신고후 18일 3중대 3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시작하였다  

정신이 번쩍 번쩍 들을만큼 초 긴장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뒤바뀌는 환경속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나날을 지내는 일상이 조금씩 조금씩 나를 군 생활에 익숙케 하였는데 ...

분별이 불확실한 적은 나이에 가진 역경과 과분한 책무와 오늘 당장의 안전을 알 수 없는 경지를

어떻게 견디어 냈는가?가 내가 살아 온 보배로운 순간 순간의 퇴적이자 나의 인생사이다,

이것을 짚고 넘어갈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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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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