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반달이 중천에 떠 있네요
저 달이 만월되어 기울고 또 새달 초하루가 되면
공주 선산 영모제의 추향을 시작으로
이어서 누대 선대의 제향이 이어지는데
미리부터 향사참례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레서 음력 시월을 앞두고서는
꼭 먼저 공주 선산 참례의 추억부터 떠 오르곤 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공주 선산 추향 참례를 한것은
6.25 휴전 직후(23세때)부터 였습니다
50년 반백년을 훨씬 지난 이야기이니 역사이야기쯤 되겠지요?
그때 나는 휴전이되어 마음 느긋하게 전방에서 복무중인
꾀 이골이 난 (고참)육군소위때 였습니다
그때 고향(충북 보은)에서는
이제 평화가 되었으니 선대 제향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시사참사에 종손이 궐사하면 누가 초헌 집례를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신 문장어른의 지엄하신 분부와 종회의 중론에 따라
미리 미리 우편으로 전갈이 되고 참례하겠다는 답서를 보내고한 끝에
한복(제복)은 어느 어른 편에 보내겠다는 (꼭 참례를 다짐하는 엄명)
최후통첩이 있고부터는...
구월 그믐날 부대를 빠져 나아갈것을 조바심하고 안절 부절했던 일과
첫새벽에 전방에서 극난한 교통편으로 공주에 도착했을때의 희열은...
그후 결혼하여 집에 둔 신부를 만나려 달려갈때의 설렘과 맘먹었습니다.
그때,
버스타고 공주에 도착하여 금강 나루에서 신관리로 나룻배로 건늘때,
(당시 금강 도강 수단으로 철교는 있었으나 그런 장거리우회는 불합리)
그때의 나룻배 사공(님)은, 마지막 풍습으로 기록될 그 사공(님)은...
꾀죄죄한 중이 적삼에 사내끼로 허리를 잡아매고 있던 그 뱃사공이...
선산 참례객을 무조건 무임으로 무수히 오가면서 건너 주었는데...
태사공 시조할아버님의 천년후대 후계자임을 자처함인가?
심바람 나고 희희낙낙 꾀나 즐거워 보였고
제관들 또한 한 없는 자긍심으로 사공에게 치하하며 강을 건넜는데
반백년 지난 지금은 전설로만 남아있는 아련한 추억입니다.
구불 구불길을 걸어 영모제에 당도하면
그때의 제실 영모제는 한낫 초라한 초가집이었습니다
지금도 주변엔 인가가 없지만 산골작의 단칸 오두막집이었는데
안방에는 원로 어른들께서 첩좌하고 계셔 들어가 절 올릴수 없고
문밖에서 어디에서 온 누구 인사올립니다 라고 읍만 올릴뿐이었고
윗방 제관들은 꽉 베겨앉아 꼼짝도 못한체 연신 물양푼만 드나들었고
더러는 처마밑에서 이슬을 피한체로 겨우 날을 새고서 향사한 후에는
이튿날 공주에서 전의로 옮겨가 초사흣날 시조 향사한 기억이 또렷하고
이렇게 노심초사하고 고생하며 시조제향을 뫼신 바로 직후에
다시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방으로 달려 올라가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그 후로부터 수년전까지 선대 춘추향례에는 궐례가 없었는데
특히 공주 전의 향사는 대전에서 한나절의 위선봉사였었는데
지금은,지금은 한낫 묵례로만 이날을 기념할 수 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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