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石造像은 대전기상대 청사 현관우칙벽에 설치된 석조각 판화입니다
세종 성군께서는 조선 초기 치국평천하의 으뜸으로
국방과 농경을 위주로한 민생안정을 도모하시면서
농경(農耕)에 필수인 치력명시(治曆明時)를 중요시하여
앙부일귀 혼천의 칙우기 자격루등 모든 천문과학기기가 이때에 발명되었고
현군아래 명신이 운집하여 화려한 세종시대를 열어 나아갔던 시대이었습니다
이 석조상그림은
세종15년(1433년) 8월에 공조참판 이 천(李 蕆)께서 혼천의 칙우기등을 제작하여
세종대왕께 올리는 장면사진으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공조참판 이 천께서는 鑄字와 兵機와 수 많은 천문관측기기의 발명을 관장하셨고
병조참판과 평안도 병마도절제사로서 육진을 개척하신 장군이시고
민족문화를 빛낸 과학자로 "명예의 전당"에 모시고 숭앙하고 있습니다.
시호 翼襄公 이 천(李蕆)(1376-1451 수:76세)은 우송의 20대조이시고
자손이 낙향한 충북 보은에서 설단 년1회 춘향사하면서
위인에 대한 홀례를 전 자손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세종실록의 발췌입니다
世宗 61卷, 15年(1433 癸丑 / 명 선덕(宣德) 8年) 8月 11日(辛卯) 4번째기사
정초·이천·정인지 등이 혼천의를 올리다
與
李蕆質問制度, 世子入啓。 世子至簡儀臺, 與鄭招、李蕆、鄭麟趾、金鑌等, 講問簡儀與渾天儀之制,乃命鑌及中官崔濕, 夜直簡儀, 參驗日月星辰, 考其得失, 仍賜衣于鑌, 以其夜直也。
自是上與世子, 每日至簡儀臺, 與鄭招等同議, 定其制度。
임금이 그것을 곧 세자에게 명하여
이천과 더불어 그 제도를 질문하고 세자가 들어와 아뢰라고 하니,세자가 간의대(簡儀臺)에 이르러 정초·이천·정인지·김빈 등으로 더불어 간의와 혼천의의 제도를 강문(講問)하고,
이에 김빈과 내시 최습(崔濕)에게 명하여 밤에 간의대에 숙직하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참고해 실험하여
그 잘되고 잘못된 점을 상고하게 하고, 인하여 빈에게 옷을 하사하니 밤에 숙직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임금과 세자가 매일 간의대에 이르러서 정초 등과 함께 그 제도를 의논해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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