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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 추억

by 우 송(又松) 2012. 3. 15.

3.15 . 3월 15일에 한미 FTA 가 발효된다고

장장 4년여동안 밀고 당긴 협상끝에 조인된 한 미 FTA 발효 되는날까지도

찬 반의 극렬한 시위가 끝이지를 안는데 반대 데모의 맨 앞에만 서는 유명인사 몇몇중에

정동영씨께서 얼마 동안 안 보이기에 실그마치 그의 트위터를 엿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밤 12시 굴욕적인 한미FTA가 발효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역사적 과제를 한번도 그냥 넘긴적이 없다.

3.15는 발효 첫날이 아니라 폐기를 향한 첫날이 될것이다"...라는 유명 어구를 남기셨습디다

아무때나 어디에서나 언제까지 "반대"만 외쳐대니  이젠 식상해 버려서

나의 3.15에 대한 추억이나 들추어내서 회상해 보자. 

 

옛날 옛날 52년전 1960년 3월15일에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자유당 정부에서 현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을 꼭 당선 시켜야 할 절체절명의 명제앞에

기필 당선을 위하여 부정선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만해도 몽매하고 어둑한 시대였기에 공공연한 부정 불법이 횡행할 때였었다

막걸리 고무신 선거라는 표현과 民意의 동원을 위하여 우마차를 광화문앞에 끌어내던 시대이니 ... 

자유당이라는 이승만 집권당에 대항한 민주당에 대한 압박 핍박은 날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어도

공공연하게 불법이 저질러지는데...심지어는 민주당 인사 집 대문에 걸려있는 문패를 밤중에 때어간 다음에

문패가 걸려있지 않다고 연행한다고 강제로 붓잡아가는 행태가 자행될정도였으니...

독재 독재 압박 소리 안 들을려면 선거에서 승리해야하는 당면과제앞에 부정선거는 필수였던것이다

 

그때 나는 이곳 대전 유성 봉명동 지금의 군인휴양소에 임시 주둔한 공병 205대대의 군수과장 겸 본부중대장이었다

205공병대대가 논산훈련소의 막사 개량공사와 목욕탕 취사장 각 26동식의 신설공사에 2개중대를 투입하고

1개중대는 휴양소의 원형 목욕탕의 내외부를 전부 개수하는 공사를 하였는데

왜 대대본부는 유성에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직후에 광주 31사단내로 대대가 이동하였었고

군수과장 (4과장)으로서 훈련소 공사의 각종 자재를 부산공병기지창에 출장해서 미 고문관을 상대로 청구하여

화차로 미제 port land 시멘트와 역시 미제인 내화벽돌을 수송하는 대임을 무난하게 수행하는중에도

본부중대장으로서 정 부통령선거에 제4투표구 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 4투표구에서 단 한표의 반대표만 나와도 대대장과 투표구 선거관리위원장은 당장 파면될 극도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우리 선거구는 같이 주둔해 있던 1508 땀추럭 중대와 우리 1개중대와 본부요원 합해서 300명쯤의 순 군인 투표구였으니

100퍼센트 자유당 투표에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장교가 지켜 앉아서 투표용지를 받아 펴 보고 투표함에 넣도록 하였으니까 ㅎㅎ

또 100% 이승만 이기붕표 나오면 선거관리위원장은 표창이 보장돼 있었으니 내 선거운동 활약상은 가히 모범사례이고 ㅎㅎㅎ   

그래도 그래도 한표의 이탈표가 염려되어 그날밤 유성국민학교 개표장에 가서 밤새워 캐표를 지켜보다가 비로소 안심하였고

직후에 부산공병기지창에 나려가서 출장업무 수행중에 가까운 부전동 네거리에서 규탄시위장면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 마산에서  눈에 총류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체가 저수지에서 발견되면서 시위대가 흥분하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연일 극렬시위를 하는중에 서울에서 고대학생과 교수진의 시위행렬이 드디어 4.19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나는 나는 100% 투표에 표창은 고사하고 부정선거 주도자로 일시에 전락해서 자칫 처벌을 받을 위험에 처해 버린적이 있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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