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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松 이헌영의 blo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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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과학관 관람

by 우 송(又松) 2014. 5. 23.

 

 

 

 

 

 

 

 

 

 

 

 

 

 

 

 

 

우째 蔣英實을 앞세웁니까?


역사상 이조 세종년대만큼 조선왕조가 화려하게 발전한 때가 없었고

그렇게 발전한 원동력은 세종대왕의 뛰어난 치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세종년대만큼 충신 명현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던 적도 없는것 같다

현군아래 명신 있는 천리대로 세종께서 훌륭한 신하를 중용한 탓일 텐데

“조선왕조실록”이 실제 입증하는 대로 당시의 훌륭한 재상 명현은 많았지만

위대한 업적 한글창제와 과학기기의 발명에 헌신한 과학자는 그리 많지않다

실제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조선 세종년대의 과학자로는

세종대왕과 李蕆(이천) 李純之(이순지) 蔣英實(장영실) 네분 뿐인데

●그중 이천 익양공께서는 평안도 도절제사로서 북방 침노(侵奴)를 평정하시고

김종서와 함께 육진.사군을 개척한 공로로 호조판서의 겸직이 특배되시고 

공조참판으로서 세종대의 과학기기의 발명을 관장하셨다

●실제로 경자자등 주자를 개주(改鑄)하여 금속활자를 발명 창제하셨으니

대제학 변계량이 만세무강지복이라는 발문과

●경자자보다 더 정교한 갑인자를 개주하여 조선만세지보라고 “대학연의” 서문에 직제학 김빈의 발문으로 보아 중추원사 이천의 감장하에 제학 김빈. 호군 장영실.첨지 이순지.참군 이의장등이 참여하였고

●혼의 혼상 규표 간의 자격루 앙부일구등 천문관측기기를 비롯 허다히

많은 과학기기의 연구 발명과 신규제작함에 있어

상명(上命)으로 판중추원사 이천이 감장한 공역에 호군 장영실이 타고난 재능과 공교한 솜씨로 (장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난)(조선왕조실록 세종61권 15년 9월16일 3번째 안숭선에게 명하여...기사 발췌함) 공역에 종사하였는데

●장영실의 부가 원나라사람이고 노비에서 출생한 신분임에도 호군 벼슬에 오른 극적인 경우가 오히려 돋보여서 적확한 역사사실에 앞서 중구에 회자된 장영실이 당시의 과학기술의 총수 이천을 앞서서

●소위 과학기술상명을 “장영실상”이라고 명명한것이며

●과학교육의 전당 과학기술연구원(KAIST)에 장영실동상이 서 있는 사례는

 역사적 사실을 심하게 훼손하는 처사로 본다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와 과학사의 연구학도 과학칼럼니스트에 이르기까지 많은이들이 이천을 장영실보다 뛰어난 과학자라고 설파하지만 근년에 퍼진 잘 못된 속설을 뒤집기는 어려운가 보다

●역사에 뚜렷한 사육신도 그 이름이 뒤바뀔 수 있음을 우리는 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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