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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松 이헌영의 blog 입니다
그룹명/내가 쓴 글.

2013.05.31 세계 금연의 날에.

by 우 송(又松) 2013. 5. 31.

또 오늘이 금연의 날이라고 메스컴들마다 유난을 떱니다

내가 결심하고 금연한게 2010.5.31 금연의 날부터인데요

짧은 금연 이력에 비하여 금연에 대하여 더 극적인 일화가 많습니다

 

생전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것은 군 입대 하고부터이지요

제주도 신병 훈련소에선 1일 열개씩 이틀에 한갑 기준의 담배 보급을 받은 셈이지만

그 보급품이 실제로 신병 개인에겐 보급이 됩니까? 그럭 저럭 층층 상관들 몫이지요

전방에 배치되고부터는 비록 졸병 신병이라 할지라도

이틀에 한갑 화랑담배와 하루 세까치 기준의 양담배를 보급받았는데

이틀에 한갑 화랑담배와 양담배에 처음으로 담배맛을 알고 피우기 시작했고

하루 세까치의 양담배가 소대단위로 모아저서 한갑씩 또는 한보루(열갑)로 모아저서

양담배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던 여러가지 사례들도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특히 특별히 기억나는 대목은 내가 결혼을 한다고 고향에 내려왔을때인데

그때 어렵게 어렵게시리 소대원 두사람(경주사람 이형생 과 호남 사람 김태옥)이 와 주었는데

소대원들이 모아준 양담배 두보루?가 새신랑 초급소위의 품위를 훨신 높게 격상시켜준 기억이 난다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전방 사병 두사람은 귀대했고 나는 신혼부부가 형식대로 처가엘 갔었는데

이때 양담배의 요샛말 "존엄"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나는 양담배(camel?)를 노상 입에 물고 있었던 기억이고 새신랑 주변의 또래들에게 

양담배를 쓱 쓱 빼주면서 피우기를 권했던 호기란...계급 고작 소위의 품위와 권위를 가짓근 격상시킨 기억이다

 

군 복무중에는 물론 제대후에도 흡연은 필수이다시피 당연시됐었다

친소간에 윗어른이 볼때는 뒤로 돌려 감추는 정도의 예절 표현외에 흡연에 구애받을게 없었고

흡연은 성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사로서 응당 서로 주고 받으면서 권하는 교제의 첫 단계엿던것이다

 

금연,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류의 통설이 확산된것은 오래지 않다

박정희대통령의 일거일동에서나 영상이나 사진에서 보는 연예인 또는 고관들의 모습에서도 

담배(연기)를 피우는것은 상식적이였고,혹 미성년자에게나 학생들에게만이 홉연단속의 대상이었었다

 

그러던것이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고 계몽되면서 금연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는데

금연 의식의 확산을 가저온 크나큰 계기가 된것은 "이주일의 폐암"에서 비롯된다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쫓았다.(死諸葛走生仲達)는 삼국지의 古事대로

폐암 말기의 이주일씨가 병상에서 거이 사경의 몰골로 마지막으로 한 "담배를 끈으세요" 란 말을 단초로

전국에 금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금연전도사 암연구박사 박재갑씨가 조직적으로 확산시켜서

이제는 금연을 거이 반 강제하다시피하니 흡연인구가 팍 팍 줄을 수 밖에 없다

또 (금연의 날 홍보에)때를 마춰서 음악 문화계의 유명인사 DJ 이종환씨가

어제(5/30 01:00시쯤) 앓고 있던 폐암으로 돌아가신게 금연홍보에는 더 할수 없는 계기가 됬다

이제는 폐암 사망자중 흡연자의 비율이 4배에 이른다고 큰 소리하며 금연을 강제하고 있잖은가?

이제는 흡연의 폐단 불편함 체감한 청장년과 노년층에선 금연할려고 모부림하는 반면

갓 담배를 피기 시작하는 청소년층과 여성흡연자들이 담배의 중요소비층이 돼 버린 단계인데

 

그옇고 담배를 끊었고 소위 금연전도사라고 보건소에서 인정해 주어 방송에 까지 출연했던 우송이

한때 금연전도사로 자처한 이력으로라도 생전 생전 다시 담배를 피우는 일은 없어야겠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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