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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쟁은 시작됐다

by 우 송(又松) 2010. 5. 29.

[金東吉의 直說] 전쟁은 시작됐다
 
국회의사당을 버리고 광장에 나와 앉아서 정치를 하겠다니, 그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깨고, 기필코 임기 전에 李明博 퇴진을 실현하겠다”는 굳센 의지의 표현이다


金東吉
⊙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 평양고보·연희大 영문과 졸업.
⊙ 연세大 사학과 교수·부총장, 통일국민당 최고위원, 제14代 국회의원 역임.
    現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金東吉 연세大 명예교수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가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위기는 광복을 맞으면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38선 이남에는 미군이 진주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두 강대국이 東北亞(동북아)에서의 대결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이 두 나라는 이념과 사상, 체제와 제도가 극에서 극이라는 사실이 처음부터 문제였다.
 
  그 후 50년 동안 제3차 세계대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의 반목과 대립 때문에 이 지구상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반복됐다.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쟁도 따지고 보면 이념이 빚은 同族相殘(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한국전에서는 평등에 치우친 사회주의 체제와 자유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맞붙어 싸우다 결국은 비기고 말았다. 北(북)의 인민공화국도, 南(남)의 대한민국도 살아남아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1953년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과 항쟁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위기는 어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만성질환과도 같은 ‘위기’라는 이름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위기에 둔감한 한국 지도층
 
  그러나 위기를 두고 남과 북의 사정은 다르다. 6·25를 놓고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1949년이나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09년이나 남쪽의 국군은 단독으로 北進(북진)통일을 할 의욕도 없고 능력도 없다. 따라서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를 조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북의 인민군은 赤化(적화)통일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군사적으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으므로 金正日(김정일)이 “남침”하고 한마디 외치면 여부가 없다. 준비 없는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각오나 능력이 북에만 있고 남에는 없다. 북은 언제나 대한민국에 군사적 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李承晩(이승만) 대통령 말고는 비록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통일의 방안을 제시하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래도 ‘失地(실지)회복’이니 ‘북진통일’이니 하는 (미국이 절대 들어주지도 않을) 구호를 부르짖으며 ‘수비’보다는 ‘공격’이 승리의 첩경임을 주장했고, 초지일관 통일하지 못하고 휴전에 응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신세를 한탄했다.
 
  군사정권하에서도 대한민국에는 북의 위기를 조성할 만한 기백은 없었다.
 
  북이 핵실험을 감행하고 도발 협박을 해도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호전적인 인민군이 남침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1억 달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뻔히 알면서, ‘평화공존’이니 ‘고려연방제’니 하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통일론을 내세우며 마치 진보·개혁세력인 것처럼 행세하는 자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
 
  언제까지 평화공존을 하자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경제력·군사력이 전쟁하지 않고 평화리에 북을 ‘접수’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인가.
 
  아마도 그 반대일 가능성이 짙다. 그들의 주장은 북의 인민공화국이 남의 대한민국을 ‘접수’하게 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태평성대’가 존재한다 해도 북이 적화통일을 꿈꾸는 동안은 대한민국의 위기는 언제나 있다고 보아야 옳은 것 아닌가.
 
  鄭周永(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북에 소 500마리를 무상으로 보내면서 남북화해의 물꼬가 트이는 것처럼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 뒤에 또 한 차례 소 501마리를 보낼 때에도 사료와 차량을 무상으로 증여한 셈이었다.
 
  아마도 그 소떼 방북쇼가 없었으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에 가서 김정일을 껴안는 엄청난 쇼를 벌이지 못했을 것이고, 그 쇼가 없었다면 그는 스웨덴 한림원이 주는 노벨평화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金大中(김대중)이 얼마나 많은 달러를 북에 건네 주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5억 달러라는 말도 있고 6억 달러라는 말도 있다. 아마 7억 달러는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김대중은 그 후 5년 동안 북에 건네준 달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딱 잡아뗐다. 2005년 6월 15일, 6·15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는 처음 이렇게 털어 놓았다.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을 찾아가는 데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서 1억 달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김정일에게 준 돈에 대한 그의 첫 번째 고백이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아마 세상이 한 번 바뀌기 전에는 어려울 것이다. 호남사람들이 그를 ‘神(신)’으로 또는 그 이상의 존재로 믿고 있기 때문에 그를 건드리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나는 김대중 때문에 많은 호남의 친구를 잃어버렸다. 지금도 친구로 남아 있는 少數(소수)는 언제 만나도 반갑지만, 그들은 모두 김대중 눈 밖에 나서 호남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불행한 사람들이다.
 
  盧武鉉(노무현) 자살의 비보에 접하고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한국인은 김대중이었다. “나의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느니 “나라도 노씨의 입장이 되면 자살하게 될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것은 상식적인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지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씨의 영결식장에서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그렇게 통곡할 수 있는가. 
  
  “家族葬으로 모시라”고 권유했어야
 
  自然死(자연사)나 被殺(피살)이라면 모를까, 왜 새카만 후배가 자살한 사실을 꾸짖지는 못하고 왜 통곡으로 일관하는가. 글쎄, 그만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는가.
 
  내 눈에는 그것이 마치 “민중이여, 일어나라! 일어나 오만불손한 李明博(이명박) 정권을 타도하자”고 외치는 것같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김대중은 이명박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독재에 아부 말고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全斗煥(전두환) 이후 임기를 마치기 전에 下野(하야)한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다. 盧泰愚(노태우)도 金泳三(김영삼)도 김대중도 다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자살한 노무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전통이 이미 확립된 대한민국에서 어느 대통령이 임기를 3년 이상 남겨두고 청와대에서 짐을 싸가지고 나가겠는가. 그것은 아무리 김대중으로서도 절대 불가능한 꿈이다.
 
  노무현 자살을 계기로 정국을 더욱 혼미하게 만든 1차적 책임이 이명박 정권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國民葬(국민장) 대상의 자격 규정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뜻 국민장을 허락한 것은 정부의 큰 실수라고 나는 본다.
 
  “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국민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국은 변명하고 나서겠지만, 나는 자살한 사람이 국민 모두의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고 본다. 정부는 유족에게, “국민장은 어려우니 家族葬(가족장)으로 모시라”고 권유했어야 한다. 이승만·尹潽善(윤보선) 두 전직 대통령도 가족장으로 치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자살을 ‘逝去(서거)’로 미화시킨 것도 큰 잘못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만인은 다 법 앞에 평등한데 ‘서거’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사망’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것도 이치에 어긋난 일이다.
 
  동사무소에서는 ‘사망신고’는 받아주지만 ‘서거신고’는 받아주지 않는다. ‘逝(서)’나 ‘去(거)’가 모두 ‘간다’는 뜻인데, 죽은 사람이 천국엘 갔는지 지옥엘 갔는지 그것은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 인간의 죽음은 他殺(타살)이건 自殺(자살)이건 자연사건, 일단 ‘사망’이 될 수밖에 없다. ‘사망’은 ‘죽어서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해가 되는 것 아닐까.
  
  ‘反정부운동 결속의 날’
 
  대학입시에 낙방했다고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가끔 있는데, 우리는 그런 죽음을 호되게 꾸짖는다. 나는 노무현 기자회견 생중계에 큰 충격을 받고 한강에 투신자살한 南相國(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에게 동정은 하지만 자살은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살한 安相英(안상영) 부산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단란했던 집안의 처자를 두고 먼저 가다니!
 
  노무현의 자살도 그런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오늘의 정권 담당자들은 노무현의 자살이 정치적으로 크게 악용될 우려가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殯所(빈소)로 보낸 화환을 밟아버린 놈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이명박 물러나라”는 反(반)정부운동이 곧 시작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경복궁 영결식장에서 獻花(헌화)하러 나가는 대통령 내외를 울부짖으며 덮치려고 덤벼드는 양복 입은 한 인간의 모습이 생중계 때 비쳤다. 그가 야당 소속의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무현 자살은 이명박 정권 타도의 구실을 제공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날의 국민장 광경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보라. 그 절차가 완벽에 가까웠다. 시간상으로 한참 지연이 됐다지만 지연 자체도 미화되어 매우 극적이었다. 상여를 한번 만져보려고 울부짖으며 따라가던 문상객들 때문에 장례절차가 늦어진 것인데 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노란 모자, 노란 풍선-진정 황금빛의 물결이었다.
 
  노사모에 가입한 회원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은 정말 ‘노사모의 날’이었다. ‘애도의 날’이 아니라 ‘반정부운동 결속의 날’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벌벌 떠는 모습이 내 눈에는 완연했다. 속수무책이니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을 것인가. 국민의 힘으로 밀려났던 노사모가 다시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지난 6월 9일, 저녁 서울시청 앞을 지나가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서울광장에 20여 명이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 비를 맞고 있는데 그 뒤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는 “광장 없이 민주 없다! 서울광장 열어라”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그 주위에는 우산 쓴 사람들이 여러 명 둘러서 있었다. 알고 보니 앉아서 비를 맞는 인사들은 모두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라는 것이다. “아! 전쟁은 시작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사당을 버리고 광장에 나와 앉아서 정치를 하겠다니, 그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깨고, 기필코 임기 전에 이명박 퇴진을 실현하겠다”는 굳센 의지의 표현이었다. 
  
  민주주의 무너지면 민주당도 끝장난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은 일대혼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혼란은 무능한 한나라당을 더욱 분열시키고 쓰러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 출신 중 몇을 빼고는 민주주의의 틀이 무너지는 그날로 그들의 정치생명도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사실을 미리 내다보지 못하는 것일까.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지지율이 10%도 못 되는 참혹한 지경에 다다랐을 때,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고 “제발 당을 떠나달라”고 애원했고, 노무현 이름 지우기에 급급했었다. 그 사람들이 어찌하여 노무현의 자살을 기리고, 그를 聖人(성인)·殉敎者(순교자)처럼 높이면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발벗고 나서는가. 한마디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북의 김정일은 핵무기를 만들어 대한민국만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미국도, 심지어 중국도 협박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정신만 바짝 차리고 이에 대응한다면 뜻하지 않았던 통일의 찬스가 올 수도 있다.
 
  간첩들이 지난 10여 년간 마음대로 침투하여 이른바 지식인들도 많이 포섭했고, 그들을 통해 학생과 근로자들도 꽤 많이 조직에 포함시켜 버튼만 누르면 모이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돌도 던지고, 각목도 휘두를 수 있는 의식화된 일꾼들을 前衛隊(전위대)로 확보하고 있는 줄 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대통령 이명박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답답해서 아무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고 남은 임기 3년 반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청계천을 복원한 왕년의 서울시장 이명박이 어떻게 차마 그렇게 끝날 수야 있겠는가. 나는 그가 머지않아 현실을 직시하여 특단의 처방을 단행하리라 믿는다.⊙ -펌글-

출처 : 석천의 아나로그 쉼터,
글쓴이 : 석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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