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 관 ~ ~ ~
그가 오늘 갔다는구나
2016.04.25일에 유성 선병원에서,
죽은것만도 못한 삶을 오래도 이어 오더니
崔 永 觀 ~ ~ ~
이제는 많지도 않은 친구중에서도
연과 정분이 별 난 친구중 친구였는데 ...
... ... ...
풋내기들이 대학 초년에 동문이었음에
징병 응소의 한 대열로 L S T 로 실려갈때
칠흑의 망망대해에서 일행 아홉사람이 부여잡고
"해조곡"이라는 노래를 반은 흐느끼며 불렀잖은가
애숭이들의 불안한 앞날을 조리면서 울먹이면서
일행중 이철제가 가수만큼 멋들어지게 불렀고 . . .
그때 우리들 가슴에 깊이 새겨진 "갈메기 바-다 위에..."를
그런일 후 70년쯤이 지난 지금에
말 문을 막은 당신의 병상 머리에서 내가 읊조렸잔은가?
내가 당신을 해후할때 멀끔한 노신사앞에 정중하게
"이헌영입니다"하고 첫인사를 하니 "노인회장 최영관입니다"해서
"최영관? 당신이 최영관이야? 최영관 맞아?
깅가밍가하면서 반가워 마지않던 최영관. 그 최 영 관이 ...
참으로 별난 인연으로 재회 후에 우리의 화제는 실타레 풀리듯 한량 없었고
세상에 그런 친한 친분이 어데있느냐? 큰 소리하면서 너무 너무 의무로우니
말다툼도 심했고 며칠씩 침묵속에 냉전도 벌렸었지
시기하고 제압하는일도 다아 부질없는 짓거리인것을
당신의 병상 머리맡에서 혼자 반성하면서도
그 기간이 결코 길은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닥친 영결의 순간이
우리 모두 겪을 영결을
지금 겪으면서
잘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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