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又松 이헌영의 blog 입니다
그룹명/내가 쓴 글.

고암 이응노미술관

by 우 송(又松) 2013. 8. 23.

요새 1KBS가 짧은글로 광고하는 교양푸로에

고암 이응노화백을 방송해주고 있어서 볼 만했고 

시립미술관 옆의 이응노미술관을 몇번 가서 본 그림이

그어른의 미발표 유작이라고 하니 더욱 소중해 보입니다.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

서화가 호는 고암 1904년 충남 예산 출생 

 고암의 예술 생애는 흔히 중견의 수묵화가로서 1950년 후반가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전반기와

1958년 파리로 건너가  활동한 후반기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1922년 해강 김규진에게 전통적인 동양화법을 사사한것을 바탕으로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수묵화를 구사했던것이 초기의 작품세계였다면 ,

1956년 파리 정착후 국내에서 수묵을 통해 보여준 이러한 동양적인 회화를 서구적 조형감각과 접목시켜 그의 예술을 세계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던것이

후기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파리 체류 후  서양화법에 대한 관심및 체득이 곧 그의 수묵 채색에 수용되었으며 이러한 시도는 서구적 표현 양식과

현재적 조형미학을 수렴하여 후에 나타나는 반추상과 연관이 깊다.

 

 파리 정착후 나타나는 그의 추상은 초기의 서예적 추상과 사의적(寫意的) 추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는 초기의 파피에 콜레의 수법을 통하여 풍부한 색체와 폭넓고 미묘한 효과를 살리려 했던 것에 반해 만년에는

그러한 화면의 뉘앙스보다 문자(漢字:한글)의 형상이 만드는 더욱 견고한 통일성과 깊은 정신적 차원을  천착(穿鑿 )해 보이는 경향을 띠었다.

즉 초기의 추상은 화면과 색체의 부정형적(앵포르멜)추사이었다면 후기의 것은 기호화된 문자를 통한 조형적 추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암은 결코 어떤 脈속에 자신의 예술을 위치하려 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가 한국화의 기존적 조형 레퍼토리의 틀을 부수고,

관념화된 한국화 사고에 과감히 도전하려했다는 의미에서 그는 한국미술사에서 선구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송암미술관 소장 : 투우도( 鬪牛圖) 47*44c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