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년전쯤
광주 상무대 공병부대의 운용과에서 근무할때
내 임무가 참으로 광범위하고 업무량이 많아서
그 직무에서 1년간을 견디면 보직변경을 해 줬다는 관례를 깨고
장장 3년간을 씨름하며 이겨냈던 당찼던 한때를 가끔 회상한다
게다가 업무소관상 상무대 소방업무를 전담해서
소방차 두대를 보유한 상무대 소방대장 직무를 겸직하였었다
소방업무라는게 화재발생시 긴급출동 진화작업을 할때 이외에는
관내 지원부대의 소방점검이랍시고 목에 힘주고 뻐기는 일과
소방대가 일상 긴장하도록 불시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외에는
중요업무에 밀려서 가욋일로 여겨지기도 하였었는데
1958년도 년말쯤 내가 대구 2군사령부 출장에서 돌아온날 저녁에
광주시내 양동 도시공장(지금의 금호그릅 20여개 계열공장 집결지)에
지역내 전 공장이 전소할만한 큰 화재가 발생하였었다
내 집은 양동일대와 주변 광주천이 내려다보이는 월산동이라서
화재현장과 불구경나온 주민들과 주민들에 휩싸여서
오도 가도 못하고 쩔쩔매는 소방차들의 상황이 나를 흥분시켰다
단숨에 뛰어나아가 파출소 경비전화로 상무대소방대의 출동을 지시하고
나는 시내쪽으로 달려오는 소방차가 군중때문에 속도를 줄일 지점에서
선두차에 올라타고 광주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좌회전케 하였었다
그때만해도 대교 다리밑에 쌓인 모래를 이용한 소규모 개와공장이 있었고
군 시설보수에 조금씩 쓰이는 개와는 여기에서 시멘트와 바꿔쓰던 때라서
개와공장 출입로를 알고 있던터라 소방차 두대를 공장으로 끌고가서
차 앞바퀴가 물에 잠길만큼 밀어넣고 대원들을 마구 물속으로 밀쳤더니
날쎈 대원들이 한대당 두갈레 호스를 건너편으로 끌고 가는데
강건너 불구경꾼들 덩달아 신이나서 호스를 끌어주워
순식간에 네갈레 세찬 물줄기가 불길을 덮쳤다
그때까지 화재현장에 바짝 다가가서 차에 담긴 물만 뿜어내곤
기능마비된 광주소방서 소방차의 소방수들은 군소방차로 제 세상 만난드시
물을 쏴대는데 공장내부엔 연기와 고열때문에 들어가질 못하는것을
우리 안개형 노즐(fog nozzle)로 내부 공장시설까지 완전진화할 수 있었다
나는 현장의 총 지휘자로 의기양양해서 현장을 지휘하는데
소방서장외 모여든 기자들 인터뷰 뿌리치는일이 더 어려웠었다고 기억된다
그이틋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인천회장님께서
그때 윌릭스찦차를 타시고 수행원을 대동하고 우리 부대를 방문하셨는데
공병부장님께 "내 재산 생명을 살려 주신 젊은장교"라고 치하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나고 수행원이 금일봉을 건네는것에 좀 욕심이 났지만
공병부장님께서 사양하시어 저윽이 서운했던것도 지금은 한낫 옛이야기고
며칠후 관구사령관 임선하장군 입회하에 최고급 전축을 선물받아
장교식당에 비치하고 웃쭐했던 한때가...."그때는 옛날"의 추억.
(사진은 50년전 젊은장교 이헌영이 박회장님으로부터 수상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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