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를 보았습니다
유명 안경점의 진열대 위에 장식품으로 장치된
진품 목화를 참으로 오랫만에 보고 한참 눈여겨 보았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목화에 대하여 실물을 본 적이 없을겁니다
그렇게 소중했던 "목화"가 신 문물에 밀려났기때문에요
지금도 인도와 중국의 오지에선 대규모로 기업적으로 재배되고 있다지요?
목화가 식물성 섬유로서 면사와 직물로 바뀌는 과정은 실로 험난합니다
이 잡다한 과정을 혐오하는 눈으로 낫낫치 겪은 쓰라렸던 역정을 되새겨 볼렵니다
생업으로 하고 있는 나라들은 역시 문명이 뒤 떨어진 나라들인줄 압니다
우리 나라도 지금의 극 노년세대가 아니고서는 목화를 본 적이 없는게 맞지요
목화는 농작물로서 환금과 수직물 생산에 유일한 역할을 하였던 식물이었습니다
(집집마다 재배하는 목화가 의생활의 원천 섬유와 직물의 전부였으니까요)
왜정 말기 국가와 특히 군 수요 직물의 생산을 위한 공출제도때문에
농가 집집마다 면화(목화)제배가 강제되어 큰 고통을 당한 기억이 납니다
아련한 기억속에 목화가 좋은 감회로 떠 오르는 단 한가지는
목화꽃이 지면서 이내 여물기 시작하는 목화송이의 문여물은 연하고 달큰해서
목화밭을 지나치며 몰래 몰래 따 먹는 제일 맛있는 주전버리꺼리였습니다
길섭의 목화대궁은 꽃만 피우고 열매의 결실이 없는 도장목(徒長木)이었을 정도로요
여러가지 색갈로 피는 꽃도 고왔고 말랑 말랑한 목화열매가 영글기 시작하면...
목화밭 고랑에 피기 시작하는 목화가 점점 하얀색 일색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수 없는 남녀 노소 일꾼들의 일손에 목화가 부터있게 마련이다
하얀 목화송이가 땅에 떨어져 흙이 묻지 않도록 조심 조심 따 모아서 이불보따리 만큼 되면
목화가 온통 밭을 하얗게 뒤덮으면 전 가족 총 동원하고 품아시해서 따서 한마당 널어 말려서
한방 가득 쌓아놓고 밤 낮 가리지 않고 둘이 마주 앉아 씨아시를 돌려서 미나씨를 빼야 폭신한 솜이 된다
이 솜 뭉치를 아낙네들이 활을 튕겨서 가짓근 부풀리는 일 솜 타는 일도 또한 필수다
부풀은 솜을 물래를 돌려 실을 빼기 위하여 길다랗게 꼬치를 만드는 일은 아이들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수북히 싸 놓은 꼬치를 밤을 세워가며 물래질을 하는 작업은 실을 만드는 중요한 작업인데
윙 윙 밤 세워가며 하는 물래질에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 여인들의 한이 싸이고 혼이 빠지고
윙 윙 물랫소리에 소년들 학생들 퍼 붙듯 쏟아지는 잠속에 짜증이 늘어 - - - - - - -
'그룹명 > 내가 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어탕집 여운(餘韻) (0) | 2019.01.26 |
---|---|
할멈 제삿날 (0) | 2019.01.17 |
2019년 己亥 새해를 엄숙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又松 李憲榮의 祈願 (0) | 2018.12.31 |
2019년 己亥 새해를 맞는 나의 祈願 (0) | 2018.12.29 |
(2019)신년도 일기수첩 (0) | 2018.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