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장군 호국인물 선정 현양 행사 보고 요지 (공적을 보고 드리겠습니다.(김홍희 학예관)
이천 장군님의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자현(子見)이며,
1376년 아버지 이송과 어머니 곡성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393년 18세에 별장(別將)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1402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410년에는 다시 무과중시에 합격하였습니다.
1415년 군기감정으로 평안도와 영길도에 파견되어 각 영의 군기와 의갑의 수를
헤아렸으며, 도성까지 이르는 길을 순찰하기도 했습니다.
1419년 5월, 왜선 50여 척이 충청도 앞바다에 침입하여 병선을 불태우고 약탈했을 때,
조선정부는 그 뿌리를 뽑고자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6월 2일 장군님은 첨절제사로 대마도정벌에 참전하여,
적선 109척을 소각하고 20척을 포획하는 뛰어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같은 해 7월 초에는 황해도 안흥량에서 노략질을 하던 왜적이 대마도로 돌아가자
다시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우군절제사가 되어 왜구에 대한 출정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이후에도 장군님은 충청도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로서 병선을 건조하며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였습니다.
1435년부터 약 2년간 조선의 국방은 건주위의 추장 이만주가 동북과 서북 변경지대를
연속적으로 침공해 오면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1437년 9월 평안도도절제사 이천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여 총 병력
7,800명 규모의 정벌군을 편성하였습니다.
이때 장군님은 이산과 강계 일대에 정벌군을 집결시켜 이만주의 근거지인 오미부(吾彌附)를
비롯한 우라산성 등 적의 소굴을 기습 공격하였습니다.
이로써 야인 46명을 참살하고, 14명을 생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헌대부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승진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장군님은 평안도도절제사 직책을 계속 수행하면서 북방지역의
안전을 도모하는 등 4군의 안정적인 구축과 북방의 안정에 힘썼습니다.
또한 화포 제작을 비롯한 국방분야에도 뛰어난 업적을 세우신 바 있습니다.
장군님은 1451년 11월 76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으며, 이후 익양(翼襄)을 시호로 받고,
1460년에는 원종3등공신에 책봉되셨습니다.
조선 초기 대마도 정벌과 북방개척에 크게 기여하신 이천 장군님의 호국정신은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국방부(전쟁기념사업회)가 2018년 5월의 호국인물로 이천 장군을 선정 현양한 근거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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