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 100년을 꽤뚫어 본 체험자 입장에서의 과거사 개관을 약술한다면 일단 의아심을 품을만한데
100년 근세사를 체험하며
거금 100년을 겪어 본 체험자 입장에서의 과거사 개관(槪觀)을 약술한다면 일단 의아심을 품을만한데 가장 확신을 갖고 설파할 수 있는 100년 전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근거는 우리의 선대들께서 생존하셨던 100년 전의 역사사실과 각가지 일화와 전승되는 유품들로 현세의 우리들이 몸소 겪은바와 진배없이 생생한 사실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사실들을 적시하자면 196~70년대에 온통 국내 식자층에 풍미하던 조선일보의 이규태컬럼의 개화백경(開化百景)(전 5권 신태양사 간행)에서 우리들의 유년시절에
겪은 생생한 사실을 역력히 보여주는데 적어도 이조말엽 1900년대 때부터 생활풍습과 풍물이 이 양태와 대개 같았을 것 입니다
**옛날 소위 양반댁 도련님으로 공대받은 유년시절에 겪은 이야기
삽화 옛 사진과 같이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선비 한학자로 노년을 가근동 선비들과 교유하실때에도 (경찰서)주재소에서 온 왜경 한사람이 일상 할아버지에게 거행하며 주변을 맴돌았는데 할아버지께서 보은 3.1만세운동을 주도 하신 후 서대문감옥 옥고 득병으로 51세에 졸거하시자 (감시)왜경의 발길이 끊어젔음이 요 시찰인으로 일상 미행 당한 사실을 전문(傳聞)으로 알았는데 생존시에 주변에서 극진하게 존경받았음은 물론 일상 중인(몸종)한사람의 거행(시중)을 받는데 이 중인(상민)이 덩달아 유년인 나에게까지도 존대하고 시중 받았음이 엄격한 신분제도사회를 겪은 한가지 사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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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우리들 소년들이 보고 겪은 생생한 사실 중 한겨울을 보내며 겪은 세찬 추위를 돌이켜 보면 모두가 공감하고 몸서리칠 줄 압니다, 그 당시는 일부 부유층 귀족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의 생활상이 빈곤 가난 속에 의식주를 막론하고 내핍(耐乏)하며 겨우 겨우 생존을 유지했었으니 내복 방한복이 전무했던 소년 학동들이 고작 두둑한 솜바지 저고리나 두루마기 속으로 벌건 맨살 허리를 노출한체로 학교통학 하는 것이 큰 고역이었는데 겨울 한철을 지내는 사이 손 발 귀 노출부분이 멀겋게 얼어 부풀어 큰 고생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 살찬 추위속에 음력 세밑에 마당에서 떡판을 차려놓고 장정들이 역시 맨살 허리통을 드러내놓고 떡을 치는데 김이 무럭 무럭 나는 떡판 한쪽에선 혹한에 살어름이 얼어서 쭈루룩 물그릇이 미끄러지는 현상을 목격한 이들은 지금의 추위를 겪으면서 오히려 그 당시를 회고하며 모서리를 치겠고,
내복과 방한의류가 보급된 것이 해방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미군물자가 널리 전파된 것이 방한 의류의 효시인가 합니다, 이런 체험이 역시 7,80년전의 엄연한 사실인데 엄동설한 한 추위를 오히려 즐기고 사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겐 전혀 믿기지 않는 근세사의 사실입니다.
일제 수탈기의 의식주의 빈곤참상은 그 이전부터 해방 후까지도 완만하게 지속되다가
국제간 교류와 민도의 향상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화하면서 급격하게 선진화한 현상이 과거 약 50년사이에 천양지차로 발전하면서 옛날 우리들의 유년시절에 겪은 생활상은
중세사회와 대등한 생활상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역사이래 인지가 발달한 속도는 1000년을 경유하며 완만하고 점진적인 발달을 이어오다가 우리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드린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드려
개화하고 근대국가를 형성하고 역시 서양문물에 먼저 접한 청국과의 청일전쟁등 주변 강세에 영향받아 선진적 인사들이 주도한 갑오개혁 갑신정변등 정변과 사회혼란중에도 개혁이 진행되었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숨가쁜 개화를 이룬 과도기를 거처 오늘날은 소위 그로벌시대를 만끽하고있습니다
이 변혁기 거센 파도를 헤치고 넘어온 우리들 세대는 거센 조류에 휩쓸린 채로 드디어 과학만능의 눈부신 시대를 향유하면서 우리의 완고한 사상으로서는 더 이상의 과학적 괴기현상(?)은 없을 만능의 화려한 삶까지도 겪어보고 생을 마감할 노년세대가 되고 보니 100년 전 옛날에 겪은 생활상과 80년 전 유년시절을 매양 옛날이라고 추억하며 개화백경을 어젯날의 내 소사(小史)로 치부하게끔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에 어른들께서 세태의 급격한 변화를 개탄하시며 흔하게 많이 하시던 말씀중
“세상은 말세야 !!”...하시며 혀를 차시던 장면이 지금 우리가 재창하면서 반추하는데 아마도 옛날의 그 어른들께서 환생하셔서 지금의 세태를 목격하신다면 분명히 까무라치고 경악하실 희귀한 사태가...
이제는 시의에 적응하고 내성이 생겨서 별난 끔찍한 사례에도 경악하거나 개탄할 일 없어졌지만 소위 “남녀칠세부동석”에 순화된 내 습성으로서는 삼복더위에도 반드시 웃옷입고 종아리를 감춘 긴 바지라야 외출할 줄 알았던 내 소견에 여인네의 치마 기리가 짧아지다가 옷소매도 짧아지더니 어느해 부턴가는 아예 (민)소매가 없어지고 드디어 드디어 짧아지던 바지기리가 소위 한뼘짜리 비키니 스타일인가 하는 핫팬티바람이거나 아예 아랫바지가 없어진 사태를 옛날의 어른들께서 보신다면...아마도 기함하고 부체로 얼굴가리고 외면하였을것입니다.ㅎㅎㅎ
이런 첨단적(?)의생활로 급변한 연유는 아파트주거문화에서 유래 합니다
단독주택에서 이웃기리 온손도손 다소곳이 살던 아녀자들도 어렵게 어렵게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긴장했던 마음도 풀렸는데 처음으로 대하는 이웃들이 모두 모두 부유층(?) 부녀자로 화려하게만 보이는데 덩달을 수 밖에요, 기 죽지 않을려니 각자 너도 나도 첨단여성 안 될 수 없었지요,ㅎㅎㅎ
그런데 그런데 사실인즉 지금의 모든 이들은 이 첨단 의생활을 외면은 고사하고 장면을 즐기게 되었음도 부인 못할 것입니다.
천년래의 점진적 사회진화가 외래문물의 유입과 이에 따른 인지의 개발에 덩달아 짧은 기간에 우리의 생활도 정신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향상 발전하면서 정신 문명 또한 정신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급변하여 뒤죽박죽 혼돈사회가 지속되는 중에 혼란해진 도덕관념이 어느날 세롭게 “도덕재무장”운동인가 하는 일그러져가는 세태를 개탄하며 기본적 도덕관념의 재창달을 주창하고 일어선 국가원로들의 의협적 선도적 결속과 외침에도 사회적 반응과 호응이 없자 물거품으로 살아지고 지금은 누구 하나 예의 도덕 따위 어휘는 입에 담지 않고 잊혀진 고어가 되고 말았으니 가정 나름으로 자라나는 손 자녀들에게 최소한의 행동규범을 가르침으로서 도덕적 규범이 겨우 지속되고 있지만 개탄스러운 바는 정의 예절사회 조류를 이끌고 가야 할 메스컴류의 외면에 사회규범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가정에서 손자녀들과 함께 식사하며 식사예절의 기본이 될 “음식을 먹을때는 입에서 오물 오물 먹어야하고 큰 입을 크게 벌리고 볼상 사납게 먹는 것은 올바른 식사법이 아니니라”라고 가르치는 가정의례를 온통 뒤집는 사례중 하나, 방송마다 음식이 맛있다는 유명식당(먹방?)에서 가득 앉은 식객들마다 목젖이 보일만큼 크게 벌린 입속에 크게 한수저 욱여넣고 까무라치듯 눈망울을 굴리면서 매 수저마다 한입 욱여넣은 다음은 꼭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이상한 수법의 식사법이 널리 널리 통용되도록 방송이 가르치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상머리에서 일러주는 식사예절은 다만 옛날 어른들은 그렇게 잡수셨는가?하는 미미한 반응으로 치부될 뿐이고.
우리들 노년세대가 좌고우면(左顧右眄) 엉거주춤하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또 하나의고통스런 사례, 관혼상제(冠婚喪祭)사례(四禮)법도를 몸에 익히고 따르던 습성이 눈에 선 하지만 세태의 급변에 사례법도를 고집할 수 없음은 물론이지만 가가례라고 다소 신축성있던 법도까지도 파격적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음에 크게 갈등하고 있습니다.
추향절에 선조 묘사(墓祀)에 만자손이 묘소 앞에 운집하던 정경을 이제는 볼 수 없음은 어찌할 수없고, 가가례 기제사(忌祭祀)가 가가별 별난 형식으로 신형화한 양태가 드디어 제사 상차림 업체들이 성업하는 현상으로 변형된 현상을 보고는 웃을 수만도 없고 ... 자칫 기제사 향사 사례 중에 두 명절때에 가족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 차례 뫼신후에 함께 기제사도 모셔 치우는 간편 예법 등등을 심각하게 분석하다보면 젊은 세대의 추궁도 두려우니 이만 줄이고. ㅎㅎㅎ
눈부시게 변해가는 세태속에 완고한 주견과 판단은 으레 범상에서 뒤처지게 마련이지만
옛날이나 이제나 결코 변해서는 안 될 인간의 기본적 질서가 또한 급격히 쇠퇴 해서
어른 말씀을 양수거지하고 경청하던 시절은 옛날의 모습이고 일단 반발심으로 항변부터 늘어놓는 악습이 조장되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저명인사들의 훈계나 경각성 발언에도 그 제자쯤 될 후배 세대들의 막말 비난과 얼론 매스컴의 집중 포화가 쏟아지는 사회풍토가 유아독존적 악성 개인주의정신까지 합성되어 전 국가 국민이 숭배하고 후세의 정신적 지주로 섬길 위인 한분마저도 섬기지 못하는 삭막한 세태로 바뀌고 국민 심성을 올바로 이끌 목탁으로 경종이 될 언로마저 이론(異論)과 격론 분쟁의 단초가 되어 분열 분란의 악성사회로까지 치닫는 여파가 드디어 당쟁으로 국론마저 분열되고 출혈적 생존경쟁과 더불어 영일없는 아귀다툼 파당 정쟁 속에 너나없이 함몰되어 초연해지기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첨단과학이 이제는 인지를 앞지르고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회로까지 발전한다지만 인간 고유의 영혼과 정신이 지배하는 인간사회인데 우주만물이 순행하는 순리대로 인간의 역정(歷程)도 순리로 흐르도록 안빈낙도하면서 설혹 밖에서 비행 폭력행위 등 한심한 작태나 목불인견의 꼴불견을 목격하고 당면하여도 간여를 피하고 결코 개탄하거나 흥분하지 말고 오불관언해야 할 만큼 인내력도 길러야 격변 세태속에 만년(晩年)의 삶을 지속하는 처세술인가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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