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칼럼] 비상구 찾는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2013.05.24 00:28 / 수정 2013.05.24 09:23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국제문제 대기자
김정은은 이렇게 해서 측근 실세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용해를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지난 5개월 동안 북한은 중국의 완강한 반대를 무시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와 세 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살벌한 수사(Rhetoric)를 동원하여 한국과 미국에 전쟁위협을 쏟아냈다. 북한의 부동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중국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고위 인사들이 북한에 중국 문 앞에서 말썽 부리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하게 경고하고, 중국 중앙은행은 북한의 대외거래를 총괄하는 조선무역은행과의 거래를 끊고 대북 수출품 통관절차를 강화했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실제로 무력도발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대내적으로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 확산으로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미국과 직접협상을 바라고 구두도발로 위기를 최대한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강력한 힘의 과시로 대응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도전에 밀리던 미국은 북한의 전쟁위협을 기회 삼아 B-2와 B-52 같은 첨단 전략폭격기를 한·미 합동 독수리훈련에 참가시켜 한국에는 미국의 억지력의 건재함을 보이고,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고, 중국에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인 존재를 과시하는 삼중효과를 동시에 거두었다. 핵잠수함의 동해 배치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억지력이었다. 미국은 김정은과 북한 군부에 분쟁재발은 북한체제의 위기를 의미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북한의 휴전협정 무효 선언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체면치레할 구체적 제안을 기대하던 김정은에게 돌아온 것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말뿐이었다. 박 대통령의 5월 초 미국 방문에서도 한·미 동맹 재확인과 대북 강경발언만 나와 김정은의 기대가 무너졌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들었던 주먹을 내려야 했던 김정은은 동해로 미사일 세 발을 발사하고 미사일 전쟁놀이를 접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한·미·일 대북공조를 이탈하고 특사를 평양에 보낸 것이 고립 속의 김정은에겐 뜻밖의 행운이었다.
최용해를 중국에 보낼 특사로 결정한 것은 김정은의 일석이조의 절묘한 선택이다.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과 다른 장군들이 함께 갔다. 김정은이 지금의 위기를 주도했거나 그 동기를 부여한 최용해에게 중국 특사의 큰 임무를 준 것은 “위기를 주도적으로 조성한 네가 중국에 가서 위기 종식과 대화 수용 의사를 밝히라. 그리고 돌아와서 두말하지 말라”는 고도로 계산된 메시지일 것이다.
![](http://images.joinsmsn.com/ui_joins/news10/common/t_ad.gif)
한·미·중 연쇄 정상회담 사이에 김정은의 특사가 중국에 간 것은 고무적이다. 최용해의 방중 결과 김정은의 조기 중국 방문이 실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위기는 확실히 진정국면으로 돌아섰다.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최선의 질서로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제법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장기적으로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문제를 풀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까지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중국은 6자회담부터 재개하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이 실전단계 직전에 와 있는 지금 재개되는 6자회담은 과거의 6자회담과 같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구체적인 구상은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남북대화 재개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대화 없이 신뢰 프로세스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다. 개성공단 정상화 논의가 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
[송호근 칼럼] 오염된 고국환상
[중앙일보] 입력 2013.05.21 00:20 / 수정 2013.05.21 00:20![](http://pds.joinsmsn.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305/20/htm_2013052023374810101012.jpg)
서울대 교수·사회학
미국 200만 교민은 그렇게 살아왔다. 세탁소, 청과물상, 배달원, 잡화상은 눈물 없이 회상할 수 없는 1세대 교민들의 생업이었다. 그것도 다른 인종들이 꺼리는 흑인동네와 라티노 마을에 터잡아 기록했던 하층민 탈출기는 억척스러운 한국인들만이 해낼 수 있었던 성취 무용담일 거다. 인종구분으로 쳐진 단단한 계급장벽을 누가 뚫을 엄두라도 낼 수 있으랴만, 한 층씩 올라설 때마다 단단히 다진 인류학적 애환과 사회학적 고뇌를 밑천으로 이제 어엿한 중산층 반열에 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창래가 묘사한 저 이방인적 시선을 떨쳐낼 수 없다. 1세대 교민들이 바라는 최대의 소망은 이거다. ‘자식들아, 너희들만은 주류여야 한다!’
자식세대를 주류사회로 밀어 넣고자 안간힘을 쓴 1세대 교민들이 자신을 의탁한 것은 ‘고국환상’이다. 비행기가 허름한 김포공항을 이륙했을 때 마음속에 꼭꼭 챙긴 장면들, 가령 고향집, 얼룩빼기 황소, 초로의 부모, 건설공사로 부산한 대도시, 골목길 술집과 다방, 친구 얼굴들이 물감처럼 번지는 풍경화는 서럽고 낯선 곳에서의 고투를 이겨내는 충전기였을 것이다. 이 고국환상은 첫사랑과 같아서 힘들고 외로울 때는 반드시 뇌리에 인화되고 때로는 저절로 진화해 재기의 힘을 북돋웠던 천상의 손길이다.
담대한 가수 싸이가 미국 상류층까지도 말춤 행렬에 동원하는 그 장면은 교민들의 오랜 고립감을 단번에 해소하는 감격 이상의 것이었으리라. 대통령의 방미는 교민들의 심성에 내재된 경계인 의식을 주인 의식으로 바꿔놓는 중대한 행사다. 방미 스케줄에 ‘동포와의 대화’를 빼놓지 않는 것은 이런 때문이다. 고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그들 앞에 현현함으로써 이방인적 고독과 불안을 달래고 ‘고국환상’이 덧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그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아니던가. 소수인종으로서 겪었던 정치적 소외는 대통령이 실체화한 고국환상을 통해 한꺼번에 해소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1세대 교민들이 쟁취한 부와 지위에 힘입어 중심부로 진입하는 자식에게 고국에서 온 고위층, 그것도 대통령의 입이라는 자가 행한 짓. 그것은 고국환상의 애틋함과 순결함을 오염시킨 야만이었다. 그가 가이드라고 명명한 인턴여성은 단순한 길잡이가 아니었다. 고단한 이민생활을 지켜온 부모세대의 고국환상을 미국 중심부에 활짝 개화시킬 200만 교민들의 꿈나무였던 거다.
![](http://images.joinsmsn.com/ui_joins/news10/common/t_ad.gif)
윤창중이 천하의 망나니가 아니라면, 그래도 전직 언론인으로서 천리(天理)를 조금은 알고 예의와 염치를 존중하는 선비의 후예라고 한다면, 어딘가에 숨어서 처벌의 경중과 득실을 따지고 있을 게 아니다. 그건 잡범이나 소인배가 하는 짓이다. 미국 경찰에 스스로 출두해 미국법의 처벌을 달게 받는 게 식자(識者)의 도리다. 더 중요한 것은 워싱턴 광장에 엎드려 교민사회에 석고대죄하는 것은 어떤가. 교민사회가 비난과 고통 속에서 결국 그 죄를 사해준다면 고국환상을 얼룩지게 한 오염은 씻겨질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
[송호근 칼럼] 정권 출범 100일,‘열망’을 지펴 달라
[중앙일보] 입력 2013.06.04 00:11 / 수정 2013.06.04 00:11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환란 이후 15년 동안 출현한 세 번의 정권은 이런 광경을 일소한다고 큰소리쳤다는 점에서 공통이지만, 일소는커녕 오락가락했던 경제위기에 오락가락하다가 퇴진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낭패감을 안겨줬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났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새벽잠도 설치며 부지런히 뛰어다녔건만 5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을 겨우 3547달러 올려놓았고, 경제성장률 하락을 2%대에서 저지하는 대역사(大役事)에 성공했다. 노무현 정권 때에도 증가한 소득이 고작 5000달러 정도였으니 보수나 진보나 실력 자랑할 행색은 아니다. 15년 동안 한국경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떤 고질병에 걸렸길래 고물 화차가 고산준령 올라가듯 하는가 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등극한 것은 보수진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가 열렬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진보진영이 그다지 미덥지 않아 돌렸던 발길이었다. 국민은 주눅 든 가슴을 환하게 펴줄 지도자를 원한다. 거듭되는 좌절과 낭패의 고리를 끊고 기대지평을 넓혀줄 지도자를 원한다. 한국경제가 고물차가 돼가는 원인을 정확히 짚어 체질전환을 명령할 그런 리더십이 쉽지는 않겠지만, ‘준비된 여성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적 여망은 ‘대전환’ 그것이다. ‘지지부진한 15년’에서 엑소더스를 감행할 리더십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의 대처 총리처럼 되고 싶다면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대처 총리는 동맥경화증으로 신음하던 영국을 회생시킨 집도의(執刀醫)였다. 매처럼 날카로웠던 그녀의 눈은 영국의 잠재력을 옭아맨, 정의롭지만 낡은 원리들을 잘라내는 데 집중했다. ‘복지 영국’을 창출했던 찬란한 원리와 어려운 작별을 선언해야 했다. 무소불위 노조에 싸움을 걸어 집단주의 병폐를 제거했으며, 적자 공기업을 팔아 치웠고, 주택민영화를 시도했다. 부작용도 많았다. 기차가 멈춰 섰고, 물가가 뛰었으며, 파업이 산발했지만, 낡은 정의와의 작별을 향한 그녀의 집념은 열매를 맺었다. 마침내 경제가 살아났다. 타성적 진보에 시달리던 영국을 보수주의로 보수(補修)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권 출범 100일, 박근혜정부의 행보는 차분하고 신중하긴 했다. 필자만의 평가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왠지 ‘관리형 정부’라는 느낌도 든다. 적어도 소모성 사업은 삼갈 것이며, 세금 아껴 쓰고, 국가기강을 바로잡아 나갈 것으로 믿는다. 대북위기에도 단호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차분함 뒤엔 소심함, 신중함 뒤엔 ‘리스크 제로’ 사고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쉽다. 정권의 브랜드인 ‘창조경제’로 돌파구가 뚫릴까, 체질개선이 이뤄질까? 시간제 일자리 늘리는 게 ‘고용창출’의 최선책인가? 맞춤형 복지가 서민 원기를 회복시킬까? 국무회의에서 장관들과 수석들이 받아쓴 수십 개의 리스트를 ‘차분하고 신중하게’ 실행하면 자영업에 돈이 돌고 중소기업 파산행렬이 조금은 줄겠지만 근본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닐 게다. 성공의 타성에 축 처진 한국에 필요한 건 동력과 순환계의 대수술일진대 ‘꼼꼼 체크 리더십’으론 이행 불가다. 그건 실무진에 넘겨주고, 대신 ‘통 큰 행보’ 좀 볼 수 있을까?
정권 출범 100일, 국민은 원한다. 고질병을 악화시키는 ‘공공의 적’을 호명하고 치열한 싸움을 걸어주기를. 그리하여 뭐가 문제인지 국민이 알아차릴 수 있기를. 수비형 정치에서 공격형 정치로 전환하기를. 골을 작렬시키지 않는 수비형 축구에 관중은 열망하지 않는다. 주눅 든 가슴에서 사라진 말, 열망(Ambition)! 제발 열망을 지펴주기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
'그룹명 >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단독] 노인 빈곤율 상승 `OECD 1위` (0) | 2013.11.18 |
---|---|
全身에 ‘종북癌’이 번진 대한민국 (0) | 2013.09.16 |
3.1절에 감동적인 플래시 몹 (0) | 2013.04.23 |
[스크랩] 문재인과 림수경 그리고 리정희는 삼위일체입니다. (0) | 2012.12.17 |
황상민 또 막말 (0) | 2012.11.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