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BS 드라마 "장영실"은
당초 "장영실"을 소재로 기획된 드라마인만큼 장영실을 부각시킨 의도를 짐작하지만
역사상의 진실과 너무 상이한 장면만을 흥미 본위(?)로 엮어나온게 사실입니다
역사물에서 출연인물의 인물평으로 후손들의 항의등 소재선택이 어려운줄 알지만
일단 역사적 드라마라면 작가와 제작진은 역사의 고증부터 많은 공부를 하였을 터인데
가장 기본이 되는 조선왕조실록의 "장영실"편을 상고하면 세종조에서 고작 14항목뿐이고
그나마 부정죄 불경죄 제조상 실수등으로 형벌논의 태형등이 여섯건이나 수록된 외에는
특기할 공적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고, 장영실의 생몰년대나 출생지등 기록이 전혀 없는데
다만 당시 왕명에 의하여 "지중추원사 이천"의 주제기(鑄祭器)주자(甲寅字 鑄字) 제조시에
동래부의 노비 장영실이 손 솜씨가 뛰어나 각자 기능이 탁월하여 감독자 이천에 의하여 발탁되어
솜씨를 인정받아 노비의 중용에 논난이 되면서도 사직(司直)에서 대호군까지 등용된 배경에는
스토리에서 요약한대로 공조참판 이 천의 인정에 의하여 중용되었음이 역사기록에서 인정되는데
"영실이 이물 없이 농도 건네며 맘 좋은 큰 형같은 사람이지만 공무의 책임자로서는" ...로 치부해 버리고
당시 이천(李 蕆)께서 평안도 도절제사로서 여진족 정벌로 병조판서 배수후에도 세종임금의 곁에서
세종조대에 초기 국가 기초의 다짐과 국부에 절대적이었던 농사의 발달로 민생의 안정 도모함에
필수적 농기 천기 무기등 과학기기의 연구 발명에 세계역사에 유례없는 단기간의 획기적 발명에
제1인자 공조참판 이천의 수하인물 장영실을 부각시킨 골자는 역사를 거스려도 너무 했다는 소감뿐이고
이조시대 역사의 근본 단초인 "조선왕조실록"의 사실기록과 년대를 도외시하고 전혀 허구 사실을 날조하여
공영방송이 시청자를 우롱하고 바보로 만들고 잘 못 유도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실제로 이천(李蕆)의 후손으로서 선대래력을 상고하던중 현재의 저명한 과학자들의 학술발표 논설등에서
선척(船舟) 무기 과학기기등 발명 제조에 공헌하신 이천을 찬양하고 있음에도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장영실상 장영실쑈 장영싱동상등 장영실을 과장 부각시키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개탄합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종년대의 이 천 기사 159건과, 장영실 기사 14건의 史實과 중요도를 비교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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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2) 지금 조선일보를 펼쳐보던중 발견한 드라마 "장영실"에 관한 조선일보 기사중 일부입니다 (우송)
과학사학자들은 장영실이 천문학자나 발명가라기보다는 과학 기구 제작을 담당한 장인(匠人)에 가깝다고 말한다.
세종 때 천문 기구 제작을 주도한 이천(1376~1451)이나 조선의 독자적 역법을 만든 이순지(1406~1465)가
장영실의 단순 조력자로 나오면서 드라마의 각색에 희생되고 말았다.
"주인공을 띄우려는 건 좋지만 공영방송에서 만드는 정통 사극에 틀린 사실이 버젓이 나오는 건 곤란하지 않나요?"
중학교 때 지동설을 배웠던 방송 담당 기자(권승준)도 슬쩍 끼어든다.
"13회에서 장영실이 마치 지동설을 발견한 것처럼 묘사한 것도 무리수다.
코페르니쿠스보다 장영실이 앞선다는 건 지나친 상상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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