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3. 집성촌 탐방기 (集姓村 探訪記)

우 송(又松) 2022. 3. 18. 16:19

 집 성 촌 탐방기

    고려 태조때 전의이씨 태사공 이 도 시조

조선시대 과학자 익양공 이 천선생의 후손들....(보은신문98.7.18자 제409)

외속리면 구인리 예안이씨

 

 외속리면 구인리는 480년전부터 예안이씨의 집성촌이다.

예안이씨는 고려태조때 삼한통합시 대공을 세우신 전의이씨였던 태사공 이 도가 시조이다. 시조이 도는 원래 전의이씨였는데 2세 이강부터 7세까지 삼성육부 제상을 지낸 바 있다. 충렬왕때 83형제분이 3분파조로 둘째였던 첨의정승 시 문장공 이 혼의 후손이다. 고려 보문각제학공 이 익께서 예안으로 이관하여 중시조가 되었고 시조부터 83형제분까지 10위가 충남 전의 이성산아래에 시조묘소와 영사제 경원사에 봉안되여 있다.

 9세 이언승부터 13세 익양공 이 천과 이판공 이 온형제분까지 5대는 옛양주 북산땅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당시의 사패지지로서 대대상전한 각심제(서울시 지정문화제)의 추원사에 봉안되여있다.    조선 중종 기묘사화(1519)때 익양공 이 천의 현손 17세 종사랑공 이 항과 18세 혜민서교수공 이경종 부자분이 보은땅 길상리와 구인리 일원에 피화은거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13세 이 천(1376-1451)은 조선 세종때의 과학자이며 무신이였다. 자는 자견 호는 백곡 군부판서 이 송 의 아들이다.  1393(태조 2)17세의 나이로 별장에 임명되었고 1402(태종 2)에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410(태종 10)에 무과중시에 급제하였다도지총제를 거쳐 경상도 조전절제사로 왜구의 침입을 막는데 큰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절제사로 임명되어 병선을 만드는일에도 힘쓰게 되었다이때부터 그는 물리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무예를 닦으면서 틈틈히 여러 기계장치의 원리를 생각하고 연구했다. 특히 금속공예와 그 주조법에 조예가 있어 1420(세종 2) 공조참판으로 임명되어 왕명으로 세로운 청동활자인 경자자를 만들었다.   이어 병조참판이 되고 1434년에는 지중추원사로 경자자를 개량하여 갑인자를 완성하였다.   20여만개의 대소활자로 주조된 이 갑인자는 자체가 훌륭하고 선명해 갑인자의 인쇄로 조선의 활판인쇄 기술은 일단 완성되었다.   호조판서로 재임할 때에는 정초. 장영실. 김빈등과 대간의 소간의 앙부일구 현주일구 일성정시의 규표 자격루 등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야인을 토벌할 때  여진족에게서 얻은 중국의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주철을 연철로 만드는 기술을 익혀 부족한 구리 대신에 쇠로 대포를 만드는등 화포의 개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450년 다시 중추원사가 되고 1451년 판중추원사에 이르러 궤장을 하사 받았다이때 시호는 익양으로 묘소가 실전되어 외속리면 오창리에 단소를 설치하였고 세종대왕 유서판과 실기비를 세운 추원각이 건립되어 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과학관이름을 익양공의 시호를 따서 익양관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5천년 역사상 민족문화를 빛낸 선현50인중 과학분야인물로 선정되어 19934월을 이 천의달로 정하여 공을 추모 현창하는등 공의 업적이 제조명되고 있다.   익양공의 후손인 18세 이 경 종(1498-1561)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효신 종사랑 이 항의 아들이다. 중종때 의학교수에 임명되었으며 1519(중종 14)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보은읍 길상리에 은거하였다. 충암 김정과 병암 구수복등과 교유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않고 시서를 즐기며 자손을 훈도하였다.

 이 경 종의 아들인 이 언(1528-1593)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1579년 성균진사에 오르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나어자 조헌의 의병에 참여하였으나 1555년에는 보은현감 성제원과 더불어 상현서원을 삼년산성안에 창건하였다.

 현재 예안이씨 문장공파는 익양공 이 천선생의 직손이 구인리 일원에 세거하여 자손이 번성하여 명문거족으로 형세가 굳혀져 오창리에 위치한 추원각 세전제실을 최근에 재건하여 실전선조 단소와 구인리 앞산 50정에 봉안된 선영향사를 시조제향후 음력10월 첫 일요일에 모심으로서 이날을 숭조의날이며 전국에 산재한 자손의 만남의날로 정착시키고 있다.

       예안이씨 초고를 써주신 이헌영씨에게 감사드립니다. <박진수 기자>

 

※유고의 첫머리쯤에 "집성촌 탐방기"를 실은 까갉은 타성씨들께서 우리 예안이씨의 대략적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