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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살 생일을 맞아서 2020. 7. 7.

우 송(又松) 2020. 7. 7. 19:46

난데 없는 베레모를 쓰고...... 셋째의 장남 성진이가 선물로 사 온 모자.랍니다,

2020.07.08(5/18) 우송이 아흔살 생일을 맞아서

미리 축하카드와 케잌 상품권을 받아 놓고 생각하니

올해의 생일날이 매년의 생일날과 다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생애중 마지막의 생일날이 안될까 싶어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이 앞서고 좀 색 다르게 여겨집니다

마지막 생일일 수 있는 이날을 평일과 같이 지내고 싶지는 않다고

그래서 이날 세끼 식사도 일상의 혼밥 신세를 벗어나고 싶고

마음에 품고 있는 옷가지도 몇가지 사면서 돈도 쓸 작정도 하고 ...

 

또 또 마음에 걸리는 큰 숙제 하나

모두 모두 아흔 노당(老黨)의 모임 참전용사회에 대하여는

오래전에 신만철선배님의 구십 생신 잔치에 참여하면서

-신 후에 나도 90살이 됀다면 이렇게 하리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심산대로 어떤 형태로던지 내가 시동을 걸을 예정이고 ...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만사가 미루어진 형편이지만 ...

 

생일이란게 장장 90회까지의 생일을 되 돌아보게 하는데

어려서는 생일에 꼭 미역국을 먹었던 기억밖엔 별게 없고

군대생활중에 양구에서 살림이라고 첫 영외거주를 할때에

두 맨 몸들이 우째 우째 살림도구를 얻고 사고 장만하면서

그나마 책임상 외박은 할 수 없고 등한할 수 밖에 없었으니

모처럼 생일조차 잊고 있었으니 혼자 얼마나 서운했겠는가

업무로 외출해서 지나치다가 잠깐 들려봤을때의 미안함이란

그 후로는 내 시간도 생활도 차차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지만

신혼 초기의 생활상을 회고하면 생일을 잊고 살은게 확실하고

 

(요 대목에서 말입니다, 대충 얼버무려놨으니 이 글을 보고 무책임하게 글 줄을 썼다고

블로그 전체를 무성의하다고 책하실만도 하다 싶어 부연 설명을 하자면 ㅋ ㅋ ㅋ,

1953년도 10월에 휴전후 2주간 휴가를 얻어 결혼을했고 홍천농고 신축공사등 많은 업무중

장마기간 공사 부진을 틈타 5일간 특별외박에 귀가하니 어제 장남 출산을 했고, 그후 열심히

직무에 임하다보니 인정을 받아 요직에 보직된것이 양구 시외의 파로호변 "902 주교중대"

부중대장이었는데 그럭저럭 신혼 3년여에 신혼 내외가 서로 그리워한체 얼굴마저 아사무사한

별난 신혼기간이었으니 어쨌던 신혼내외는 합쳐저야 한다고 온통 동리에 사발통문이 도는 중

이대로 두면 신랑 바람 난다고...공론에 따라 불야 불야 양구로 올려 보낸것이 새 살림의 시작이고

중대원들이 서둘러 소꼽살림은 차려졌지만 직무상 타 장교들은 소위 영외거주라고 들락날락하는데

부중대장 이중위는 야간에 하사관과 사병들만이 부대경계를 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솔선적 책임감에

가끔 업무상 외출할때 훌쩍 드나들었으니 살림집에서 지금과 같은 생일이랍시고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대로 전후방교류로 광주 1군관구에 배속받아 광주에서는 제대로 단촐한 가정이 이뤄지고

유아 장남과 할머니를 모셔다가 알뜰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의 터전이 닦인 셈 ㅎ ㅎ ㅎ)

 

이렇게 이렇게 삶이 두터워지면서 여유를 찾고 인생을 즐긴것이

그런대로 이런게 행복인가 싶게 가족이 삶에 여유가 생길때쯤에

이제는 이제는 생체가 수명을 다하면서 기력마저 기우러지는데

언제 언제까지 시들어가는 리듬이 그냥 그냥 견디어 줄 것인가?  

  

     제발 제발 김형석교수님 마냥 100세까지 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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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의 뒷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