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송이 한참 심빠람내고 날렸을때.ㅎㅎㅎ
히 히 히
유고? 산문집의 첫 머리쯤에 또렷이 기억 나는 사진 몇장 넣을려고 My picture를 스라이드로 펼치니
수 천장의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 모두 다 그때를 회상시키는 화두 꺼리이고
한장 한장이 소중해서 낫장으로는 느슨한 심사로는 결코 한장도 버릴게 없드라고,
그리고 이 낫장 사진을 모티브로 대목 대목 화제를 이어가면 삼류로라도 시큰둥한 소설이 될듯,ㅎㅎㅎ
그렇지만 遺稿? 散文輯(集)소재는 한량없지만 내 서툴은 글(말)솜씨로는 맬캉 맹탕되고 말듯.ㅎㅎㅎ
하지만 배부해 줄 독자를 자손 일가 종족들로 한정하면 꽤 유익한 지침서로도 유용할듯.ㅎㅎㅎ
(미 완)
▼ 아래 사진은 1958년쯤에 광주 1군관사(MDC)공병부 근무당시 직무상 상무대 소방대장을 겸했었고
군 부대내 화재진화에 수 많은 진화 출동 중에도 금호그릅의 광주시내(양동) 도시공장 화재 진화 출동으로
금호그릅의 재산생명을 이어 준(박인천회장의 언급)공으로 감사장을 받는 장면.
이때 소방대장 이중위는 일간신문에 지모 담력으로 민간소방서를 앞섰다고 보도되면서 포상도 수여되고...,
▼LA 하면 으례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 모국 고국따위를 그리며 때론 통 큰 우국지사가 되 보는것.
여기는 LA 싼타모니카 연육교의 끝에서 시누이 덕에 미국 구경한 둘째올케와 함께
▼나는 LA(딸네집)에 가면 그 이튼날로 OREGON주 PORTLAND로 달려갔었습니다
고교 후배 이근영을 맡형으로 4형제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HAPPY GARDEN으로...
사형제들로 부터 맡형으로 우대 받으며 가진 호사 다하고 LA 경유 귀국했었습니다
이제는 차례 차례 3형제가 고인되고 한분만이 생존중인데 보은할 길 없음이 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