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내가 쓴 글.

우송도 국가유공자입니다

우 송(又松) 2010. 1. 22. 10:48

 

우송(이헌영)도 6.25참전 국가유공자입니다

휴전 직전의 가장 치열했던 수도고지전투에서 

삶과 죽음이 맞다은 경계를 수도 없이 넘나들며

인민군과 백병전까지 벌리면서 맞싸운 용사인데요

6.25 참전용사로 칭하던것을 6.25참전 국가유공자로

작년도에 법령이 개정되고 훈격이 승격되었다고 하지만

국가유공자증서를 받은것 이외엔 별 특이사항이 없었는데

수일전 문병을 간 친구네집 대문에 붙은 휘황한 표찰을 보곤

표찰을(방문해서 붙혀줘야 정당할듯) 구청에 전화문의하였더니

대감께 간청해서 참봉벼슬 얻은것처럼 이런 표찰 하나 받았습니다

당장 내집출입문에 부착하고 문앞에서 뽐내면서 한번 으시댈렵니당.

 

**전장에서의 이야기 한토막**

밤마다 인민군이 기습하는데 밤세도록 쏴대며 저항했지만

유달리 우리소대 전방에 매일밤 기습이 집중되어서

우리 전방이 적의 침투가 용이한 개활지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분대 참호옆엔 포격 관측을 위한 관측장교 참호가 있었는데요

이 관측장교와는(비록 소위와 일병사이였지만) 참으로 친숙하였습니다

이 참호엔 식수 건빵등이 있었으며 서로 오래도록 대화할 말동무였습니다

이 관측장교에게 주간에 탄착점을 미리 조준해 사격지휘 해주도록 간청하였고

그후 야간전투가 좀 쉬웠던건 우리 전방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던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관측호에는 포탄장약으로 불을 때서 호 안이 언제나 훈훈하였습니다

장남감 콩주머니 같은 장약봉지를 호 구석에 싸아두고 불을 땠었는데

이 장약에 인화되어 폭발하면서 관측장교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신화상으로 후송할 틈도 없이 죽어가는것을 목격하고서는

내옆의 전우의 죽음을 본것 보다 더 참혹했고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놀랜 가슴 진정할 수 없고, 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밀려와 견딜 수 없을때

그런대로 똘방 똘방한 눈동자로 해서 간부후보생으로 떠 밀려 후방으로 나려왔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참상이 떠오를땐 몸서리가 처 지곤 합니다

인생의 갈림길은 이렇게 순간(찰나)에 나뉘어지지요?